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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kny's 구뜨인포

큐슈 의대 전쟁포로 사건, 아이카와 사건에 대하여

인간이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건 무엇인가?

다양하게 살아가는 인간들 속에서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더 내다봐도 가장 용서가 안되는 것.
인간이 타인의 삶에 개입을 하거나 폭력, 살인, 상해 등의 피해를 입히는 것은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권리이다.
싸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한다?
그럼 살인을 의무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격리를 해야 마땅한것이 아닐까?
내가 총을 가지고 있다고 치자.
사자나 맹수들이 곁에 살아도 괜찮은걸까?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살인까지 입힐 수 있는 맹수는 같이 살기 싫어서 안사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이전을 하고 그에 해당하여 나쁜존재로하여금
인간들이 살기 위해 말살을 시켰기에 지금 이 현대사회가 유지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살인마들도 맹수와 똑같은 취급을 받을 수가 있는데
이러한 살인마들을 어떻게 해야될까?
"같은 인격체로 취급해야해!"
무슨 입으로 똥싸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나 인격이기전에 살인마이다.
즉, 맹수와 다를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을 시켜서 개화를 시킨다고? 절대로 불가하다고 본다.
사람은 고쳐쓰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이나 배제를 하거나 사회에서 도태를 시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교도소라는 곳이 있지 않는가?

이러한 행위를 가장 많이 과거에 저질렀던 곳은 일본이라 단언컨대 말할 수 있다.

여러가지 사건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오늘은 일명
아이카와 사건이라 불리우는 큐슈 의대 전쟁포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큐슈의대 전쟁포로 사건은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나가는 1945년 5월에 발생한 일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일본을 공습하던 미국의 육군 항공대의 초대형 폭격기 B-29 한대가
오이타현과 구마모토현의 경계 근처에 학병이 조종하던 일본 육군 전투기의 공격에 불시착을 했다고 한다.

이에 B-29에 타고 있던 큐슈지구를 관할중이던 윌리엄 프레드릭 미 육군 항공소령을 포함한
12명의 병사를 포로로 잡고 재판을 열었다고 한다.
이 재판으로 인해 12명의 탑승원 중에 8명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이 때 큐슈 제국대학의 이시야마 후쿠지로 외과교수와 큐슈제국 대학의의학부 코모리 타쿠육군 군의관은
생체실험을 서부 군사령부에 제안하여 사토 요시나오 육군 대좌의 허가를 받은 후
큐슈 제국 대학 의학부는 사형선고된 포로 8명을 서부군사령부로부터 인수를 했다.
8명의 포로들은 사형의 공포에서 벗어나 안도했으며 그중에서 웃는 얼굴로 의사들을 향해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포로도 있었다고 한다.


<큐슈제국대학의의사들 출처 : 구글>

이시야마 교수를 포함하여, 토리스 타로 교수, 히라오 켄이치 조교수 등 50여명이 동원되어
미 포로를 수술실로 연행하여 산채로 간, 심장 등의 기관을 없애거나
혈액 대용으로 개발 중인 생리 식염수를 해수로 대체가능한지 알기 위하여
해수를 포로의 몸에 주입을 한다던지 등의 실험을 지속했다.

이시야마는 제자들에게 심장은 자르는 것도 꿰메는 것도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라는
교육을 했다고 한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연합군 총사령부는 포로수용소에서 행방불명된
연합군 포로에 대하여 조사를 실시했고 원자폭탄 공격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학대 등으로 사망한 포로들 이외에 미심쩍은 이유로 사라진 포로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 후 큐슈대학 지역에서 B,C급 전범들에 대한 재판 및 처벌을 시행했다고 한다.

이 때 포로 학대혐의로 상당히 많은 조선인과 대만인 군무원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후쿠오카에서 실종된 포로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품은 총사령부 법무국의 알버트 카펜터 대령은
5개월간에 걸쳐서 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후 포로들이 병원에서
산 채로 해부가 되었으며 실험과 해부가 끝난 후 심장이나 간 폐 등 그대로 잘게 썰려져
회가 되거나 불로 조리되어 육군 장교 집회소 연회에 제공되었다 라는 진술도 받게되었다.
-> 인육을 먹은 일본 육군 장교 집회소 연회인 것이다.


<B-29에 타고 있던 피해자들 출처 : 구글>

이시야마교수를 필두로 하여 토리스 교수, 히라오 조교수, 수간호사 츠츠이 시즈코, 서부군사령관 요코야마 이사무 중장
인육을 먹은 호리우치 키요신 육군 소장 등 29명을 기소하였다.

1946년 7월 이시야마 교수는 후쿠오카 도테쵸 형무소에서
모든것은 군부의 명령 책임은 나에게 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제자와 간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목을 메고 자살을 했다.
이시야마 교수는 731부대- 마루타부대의 설립과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쳐 왔다 라는 의혹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731부대의 군의관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생체실험결과물을 받고 있었다.

1948년 8월 27일 요코하마 점령군 제 8군 군사법정은 미군 포로에 대해 생체실험을 한
큐슈제귝대학 의학부 관계자, 군부 관계자 등 14명 중 5명에게 교수형, 4명에게는 종신형을 판결했다.
하지만 인육을 먹은 사람들 포함 5명에게는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일본 큐슈의대 전쟁포로의 악랄한 악행

* 여기서 그 사람들의 목적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부족한 대용 혈액을 개발하기 위해 했었고, 결핵 치료법 확립, 인간 생존성 탐구
새로운 수술방법의 개발을 위해 하였다 라고 주장을 한다.

* 악행은 다음을 참고하자.
/ 혈관에 농도가 옅게한 바닷물 주입
/ 폐를 절제함
/ 심장 정지실험을 진행함
/ 뇌와 간의 제거실험을 시행함
/ 출혈 치사량을 측정함

정말.. 만행들이다 만행.
인간으로 하여금 어떻게 저런 행위를 했을지 참 궁금하고
알고싶지도 않다.
더이상의 인간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없다고 생각든다.

한편으로는 아이카와 사건이라 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큐슈의대전쟁포로 인육사건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