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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kny's 마이띵크

비가 오려나보다. 봄이 지나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다.

 

무엇이든 열중하고 열심히 했다는 것을 내 자신이 인정할 때는 언제인가?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과 내 자신을 인정을 못해서 노력하는 사람.
과연 어떤 종류의 사람이 더 많은 노력을 했을까?
시간적으로 봐야 될까 집중력대비 시간으로 봐야할까,
난 결국 이런결론을 도달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힘의 척도는 현재 나와있는 과학적인
질량기준이나 계측수대로 표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 꼰대의 방식대로 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고,
기준점도 다르기에 요새는 노력해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노력을 안하는가?
지금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죽어라고 노력을 할것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조금 더 안정적으로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각자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일에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아닌, 내일로 인해서 내 영생이 안위를 누릴 수 있도록
즉, 목적자체가 살기위해서 라는 말이 된다.
이는 노력을 해야되는 이유조차 망각을 하게 만드는 본능적인 욕구이다.
이렇게 노력을 했다고 치자.

하룻동안 엄청 열심히 일을 하고 저녁 6시 이후로 퇴근을 하기 전
일일보고를 쓸 때 그런경우가 있다.

"내가 오늘 뭐했지? 기억이 안나네"

에이, 치매아냐? ㅋㅋㅋ
이럴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집중을 엄청 많이하다보면 그날의 일을 그때그때 서술하지 않으면
까먹게 된다. 엄청나게 집중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도 하고,
즉, 사람은 하루일도 기억을 잘 못하는데 1달전 일을 기억이나할까?
바로 이러한 생각과 두뇌사고로 인해서 나는 저 구절이 마음에 와닿았다.

봄이 지나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다.

어떠한 구절을 쓰던지 응용도 가능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빗대어 설명을 하면

예진이가 떠나고 나서야 사랑인줄 알았다.

이런식으로 응용도 가능하니 말이다. 당연히 가명이다.
사람들은 흔히들 추억속에 묻혀서 산다고 표현한다.
추억이라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원동력이 되어진다.
왜인지 그 이유를 궁금해 볼 필요성이 충분하다.
추억이 좋은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좋은 음악, 좋은 분위기, 좋은 사람, 좋은 먹거리 등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그 시점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의 '나의 감정'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논리와 비슷하게 적용가능하다.
추억속에 그때의 나의감정이 너무 소중했기에 내 첫사랑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즉, 이러한 경험과 추억을 많이 쌓기 위해 하루하루를 고되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그러한 것이 생기기란 어렵다.

왜냐?
'삶' 내가 살기 위해 노력하고 단순히 맹목적으로 돈을 위해서
일을하는 것인데, 여기서 저 위에 이야기했던 '좋은XXX'에 나오는 것중
하나라도 나온적이 있는가?

바로 여기서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주변에 있을 때 (환경적인 요소)
나의 감정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결론이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