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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kny's 마이띵크

이불킥을 차게 하는 부끄러운 순간들 과연 그 감정의 진실은?

 

'이불킥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흑역사'

이런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사람이 살다보면 한번쯤은 올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이라는 것은 실수를 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을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더더욱이나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 개인의 특성은 다르고 생각하는것이 달라서 일까
내 기준에서는 분명히 부끄럽고 이불킥을 차더라도 모자라는 듯한 그러한 느낌을 많이 받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척 멀쩡하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철판을 깔고 있다. 라는 식으로 표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철판이 잘못된것도 잘된것도 아니다.
단지 기준에 따라서 차이가 다를뿐이지 그것이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이들에게 있어서 보기안좋게 만드는 결과까지 이루어지진 않았으니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행동을 하건 어떤 과정을 가지던
'결과'치를 중요시 여기는 그러한 사람이다.
그로인해서 그사람이 어떤식으로 변하던지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괜찮다면
난 모든지 오케이인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세상에 정답이 있다면 오답도 있을텐데 오답만 있는 답안지도, 정답만 있는 답안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답은 없다랄까

아직까지 미개척된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인간이 지금 쓰는 두뇌의 용량조차도 20%를 넘지 못하는 판국인데
누군가가 나서서 선행적으로 이끌고 갈것인가.
국가라는 하나의 단체가 법이라는 규율을 만들고 사람들을 각자의 기준점을 보고
빗대어서 옳고 그름을 표기한다.

하지만 정작 웃긴 행동은 온라인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간의 주장하는 것이 아주 확고하기 때문에 나의 주장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내세우기 보다는
남의 근거가 틀렸다.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옳은 것이지 않을까? 라는 논리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피해를 입었어'
그러니까 날옹호해줘! 날 보호해줘! 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감정소모를 보면
참, 어이가 없고 더운날씨에 힘을 쫙 빼게 만드는데 제 적격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쉬다왔다고 가정을 하자.
정당하게 휴가를 내거나 월차를 낸경우에는 그 사람의 권리이기 때문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른 부서의 매출이나, 현황 등을 다 알고 있음에도
월급루팡이라 불리우는 행동을 하고 그것이 다 보인다면
그 사람의 감정은 어떻게 변화가 될까?

아마 좋은 감정으로 가득하지는 못할것이다.
적어도 기분에 따라 내 표현이 달라지면 안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사람이라는 존재자체는 아쉽게도 약한존재이기에 내 감정에 대해서
소리를 귀기울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즉,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판단할지언정
그사람이 판단하는데에 있어서 제3자가 없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감정적으로 일처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라는 것을 뜻한다.

즉, 난 고생했는데 쟤네들은 뭐야
왜 쟤네만 특권이 있어?

이런 개념으로 접근을 하면 걷잡을 수 없을정도로 일파만파 퍼지게 되니 말이다.

이러한 감정은 타인이 나에게 느낄 수도 있고 내가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기에
사람의 감정은 전염이 된다고들 표현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오늘은 이러한 사람의 감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당당함, 자신감, 거리낌 없이, 등
'상남자''상여자'를 지칭하는 단어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과연 부끄러운것이 없을까?
라는 발언부터 나의 궁금증은 시작이 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과연 사람의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어떠한 감정기재로 부터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부끄러움으로 인해서 이불킥을 하게끔 만드는 것인지 좀 더 뎁스있게 알아봐야 될것같다.

 



# 부끄러움

이움, 지움, 조움 이런류가 아니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 중 하나로 큰 망신을 당하거나 열등감을 느꼈을 때,
또는 실수를 했거나 양심에 가책을 느낄 행위를 하거나, 또는 떳떳하지 못해서
타인 앞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행동을 할때 떳떳하지 못하다는 감정을 부끄러움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다양한 표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수치스러움, 수줍음 두가지가 있다고 보는것이 맞다.

쪽팔림이라는 단어는 은어라고 한다.
정식으로 표준어가 아닌 속어로써의 쪽팔리다 라는것이 어원이라고 한다.
그렇듯이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은 어떻게 정의를 내릴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정의라기 보다는 단어로 설명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존재한다.
수치심이라고 일컫는 부분자체도 타인의 시선에 의해서 생겨나는 그러한 감정이다.
창피한 행동을 동물이나 바퀴벌레 앞에서 한다고 생겨나겠는가?
전혀 아니다. 타인이라는 대상이라는 존재가 명확해야지 수치심이라는 것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엄연히 말하자면 대상이라는 것이 나의 수치심을 얼마나 느끼게 만드는지에 대한
매개체이자 촉매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